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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최현정 아나운서도, 모인 사람들도 끝내 눈물을...

최현정 아나운서도, 모인 사람들도 끝내 눈물을...
27일 종로 한 카페에서 열린 '환자 외침' 행사... 가슴아픈 사연들 이어져
12.06.28 17:47 ㅣ최종 업데이트 12.06.28 18:27  김연하 (soljin05)

"그들이 날려버린 돈 때문에 죽을 날을 앞당겨야 하는 이 심정을 정부가 알지 궁금합니다." (다발성골수종 환자 김규원씨)

"남겨주신 큰 숙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다." (탤런트 고 박주아씨 유족)


지난 27일, 종로의 한 카페를 뒤덮은 울분이 담긴 목소리들이었다. 몸이 아픈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병원과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환자들의 간절함이 담긴 '환자Shouting카페'에서였다. 환자단체연합회의 주최로 처음 열린 이번 '환자Shouting카페'는 'Listen to Patients, Speak for Changes'라는 구호에 걸맞게 그동안 병원과 정부에 의해 가려져있던 환자들의 목소리를 듣자는 것이었다.


행사의 모토는 'solution(해결), healing(치유), shouting(외침)'으로, 환자는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외치고' 자문단(권용진 서울의대 의료정책학 교수, 이한주 상명여대 간호학 교수, 이인재 의료전문 변호사,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상임대표)은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참가자들은 환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상처받은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자리였다. 억울한 환자들과 그 가족들 등을 포함해 약 100여 명이 행사에 참가했고, 행사 내내 눈물과 울분 섞인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의료사고 증명할 수 있으면 증명해보라는 '병원의 적반하장'


아홉살 아들을 잃은 서러움을 토해내는 종현이 어머니와 최현정 아나운서.
ⓒ 환자단체연합회
환자 SHOUTING 카페

최현정 MBC 아나운서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는 항암제가 잘못 주사되어 아들 정종현군(당시 9세)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외침으로 문을 열었다. 종현군이 사망한 날을 떠올리던 어머니는 울먹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사망원인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3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투병생활을 겪은 종현이를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보내주자는 생각해 어머니는 부검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종현이의 마지막 증상이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가 잘못 주사되어 사망한 다른 환자들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병원에 사망원인을 밝힐 것을 요청했지만 병원은 오히려 항암제가 잘못 주사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으면 증명해 보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올 뿐이었다.


약 20여 분간 울분을 터트리던 어머니는 다시는 종현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던 최현정 아나운서는 물론 자문단도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종현이와 같은 의료사고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제대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건 종현이 뿐만이 아니었다. 탤런트 고 박주아씨의 유족 역시 의료사고로 인해 박주아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울분을 토해냈다. 실제로 한국의 의료사고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팀은 2010년 한 해 동안 의료 사고로 사망한 환자가 3만 9109명이며, 이는 같은 기간 교통사고 사망자 6830명보다 5.7배나 많은 숫자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사망자 중 절반 정도인 1만 7012명이 사후 대응만 잘 했다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심평원·보험사의 제멋대로 기준에 우는 환자도...


로봇수술 후 사망한 탤런트 고 박주아씨의 유족.
ⓒ 환자단체연합회
환자 SHOUTING 카페

다발성골수종을 앓고 있는 김규원(43)씨의 외침도 이어졌다. 김씨는 그 어렵다는 골수일치자를 찾은 운 좋은 케이스. 하지만 그는 두 달여를 남겨두고 수술을 취소해야만 했다. 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심평원으로부터의 통보 때문이었다.


김씨가 그 전에 받은 두 번의 자가골수이식수술에 대해서만 보험 적용이 가능할 뿐, 그 이상의 수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심평원의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김씨는 현 정부가 4대강과 같은 사업에는 수 조원의 돈을 쓰면서 왜 정작 도움이 절실한 환자들에게는 지원을 하지 않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이 외에도 대장암을 앓고 있지만 치료제 '아바스틴'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매달 500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이윤희씨, 복잡한 약관을 핑계로 혈액암에 대한 보험수술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는 민간 보험사를 상대로 집단 민사소송을 준비중인 양희숙씨 등의 샤우팅이 이어졌다.

▲ '환자 Shouting 카페' 현장 영상
ⓒ 환자단체연합회
환자 샤우팅 카페

이 행사를 개최한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예상보다도 많은 환자와 청중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며 "1회를 맞이한 행사라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가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앞으로도 행사를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연단에 선 유족들은 하나같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처음으로 샤우팅을 했던 종현이 어머니는 "사람이 중시되는 의료환경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며,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 종현이의 이야기에 보다 귀를 기울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 참가자들 역시 "환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종종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혈병 환자와 암 환자의 이미지는 고정적이다. 드라마 <가을동화> 속 '은서(송혜교)'와 같이 가녀린 시한부 여주인공, 혹은 영화 <편지> 속 '환유(박신양)'의 비극적인 모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환자Shouting카페'를 통해 이 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병 그 자체가 주는 고통보다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의료시스템과 정부와 민간의 보험제도가 환자와 가족에게는 더 큰 아픔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환자Shouting카페'는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들의 진짜 고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